상당수 인구가 운동을 일상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학교 체육교육 탓이 크다. 턱걸이와 윗몸 일으키기, 100m와 1000m 달리기 기록이 대입 성적으로 반영된 우리 같은 체력장 세대에게는 체육 또한 입시지옥의 하나일 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필수과목으로 이수한 교양체육 시간에는 테니스로 학점을 매겼다. 중간시험은 이론, 기말시험은 실기였는데 '벽 치기' 30개가 만점이었다. 이 같은 체육 수업이 재미있을 리 없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입시 부담이 가중되면서 학교 체육활동은 뒷전으로 밀리고 학생들은 비만 척추측만증 따위의 운동 부족으로 인한 질환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학교 체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학생 시절의 체육활동이 육체적 성장에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닐 뿐 아니라 뇌의 활성화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 네이퍼빌 센트럴고교의 사례는 역시 학교 체육이 대안이자 희망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른바 '네이퍼빌 혁명'은 1990년대 말 필 롤러라는 체육교사의 교육 실험에서 비롯됐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0교시 체육 수업'으로, 1교시 정규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달리기를 하게 만든 것이다. 주 1회 1마일 오래달리기부터 시작된 0교시 체육 수업은 불과 2년여 만에 네이퍼빌 관내 학군에 있는 1만9000여 학생들을 미국 전역에서 가장 건강한 아이들로 만든 것은 물론 평균 학업성적도 세계 최상위권에 올려 놓았다. 네이퍼빌의 사례에서 주목할 것은 교사의 철학과 열정, 평가 방법이다. 필 롤러는 '운동을 하는 진정한 목적은 뇌의 구조를 최적의 상태로 개선하는 것'이라는 과학적 발견을 실행에 옮겼다.
모든 학생들이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토록 하는 비결은 롤러의 평가방법에 있었다. 운동신경도 별로 없어 보이는 여학생이 뛰는 둥 마는 둥 달리기를 마쳤다면 교사의 눈에 기특해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학생이 부착한 심장박동기를 본 롤러는 깜짝 놀랐다. 수치가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 학생은 운동선수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던 것이다. 그 이후 롤러는 실기 능력이 아닌 노력 여하에 따라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운동 수행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학생들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평가는 엄격했다. 학생들은 건강도, 학업성적도 눈에 띄게 향상돼 나갔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가까이 부산 기장군 신정고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점이라면 이 학교는 0교시가 아닌 방과후수업에서 주로 체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명색이 인문고에서 매일같이 웬 체육이냐"고 학부모의 반발이 극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신정고는 교과부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학교폭력이 사라졌고 학업성적도 크게 올랐다. 학교 체육은 어떤 성적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운동이 평생 즐기면서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생활방식이라는 사실을 몸에 배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래야 나이가 들어 다시 시작하는 운동이라도 진입장벽을 느끼지 않고 한두 달 만에 포기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결론은 간명하다.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 체육부터 살려야 한다.
출처> 국제신문 http://db.kookje.co.kr/news2006/asp/center.asp?code=1750&gbn=v&key=20110120.2202620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