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어느날 특허청으로부터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상표의 등록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취소심판이 제기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A씨는 양말을 자기 상표로 생산하는 사업을 5여년간 해 왔기 때문에 자기 상표가 사라질까 봐 깜짝 놀랐다. 주변에 있는 변리사에게 자문을 받아보니 자신이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양복업자가 자기 상표의 등록을 취소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취소심판은 자기가 등록받은 상품 중 코트, 청바지 등 일부 상품에 대한 것이었다. 다행히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양말에 대한 취소 심판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말은 등록 취소를 면하였으나, 그 상표의 상품으로 포함되어 있던 코트, 청바지 등은 3년간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소가 되었다..

  상표를 등록받고자 출원할 때에는 그 상표를 사용하고자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상표제도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업을 45개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의 상품 분류내에서는 상품의 개수에 제한이 없이 동일한 비용으로 자기가 사용하고자 하는 상품을 선택하여 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의 상표권을 최대한 넓게 가지기 위해서는 상품의 개수를 최대한 많이 지정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특허청에 출원되는 상표의 평균 지정상품의 수는 지정상품의 수가 10개를 초과할 경우 추가 요금을 부과시키는 출원료 부가제도를 폐지한 200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즉, 2003년에 1개 출원상표에 대한 지정상품의 평균 수가 9개였던 것이 2007년에는 88개로 9배 이상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그로 인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과 개인적 비용은 없는 것일까? 

  먼저 출원인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출원한 상표의 등록 여부를 심사할 때 지정상품의 범위가 넓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먼저 출원했거나 등록받은 상표와 유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아 상표 등록이 어려워질 수 있다. 지정상품이 동일하거나 유사할 경우 상표가 동일하거나 유사하면 상표로 등록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상표가 등록받았다 하더라도 3년간 지정된 상품을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지정상품에 대한 상표등록이 취소된다. 자기가 사용할 상품만 상표로 등록했다면 상표등록취소 심판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볼 때 A씨는 쓸데없는 욕심 또는 상표를 출원할 때 상품 선택을 신중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에 대응하려고 변리사를 선임하고, 자기의 상표가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을 해야 했다.

  개인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떤 상표가 출원되면 특허청의 심사관은 동일 또는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상품과 관련하여 이미 출원되었거나 등록된 타인의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가 있는지를 검색해야 한다. 쓰지도 않는 지정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지정할 경우에는 그 만큼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 검색을 해야 한다. 또한, 그런 상표가 있을 경우 출원인에게 의견제출통지를 하여 출원인이 수정을 하도록 해야 하는 등 업무의 부담을 야기시킨다. 설사 그런 상표가 등록되더라도 사용하지도 않을 상품을 지정하여 등록받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그와 유사한 상표를 등록받아 쓰려고 하면 상표등록 취소심판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럴 경우 상표권자나 취소심판을 제기한 사람 모두에게 불필요한 비용과 부담을 주게 된다.

  미국과 같은 상표의 사용을 중요시하는 국가에서는 상표를 등록받기 위해서는 상표사용을 증명하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등록 후 5년이 되는 해에 또 다시 그 지정상품을 사용한 실적을 특허청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상표를 등록시켜주는 제도하에서는 상표의 사용실적을 제출하게 하는 것이 상표권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출원인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를 악용하여 쓰려고 하지도 않는 상품까지 등록을 받는다면 본인은 물론 타인에게까지 부담을 주게 되어 바람직한 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하겠다. 

 그렇다면, 상표를 출원할 때 그 상표의 지정상품을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현재 사용하고 있거나 곧 사용하게 될 지정상품을 특허청에서 예시한 상품목록을 참고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가까운 시일내에 사용할 계획이 없는 상품을 선택하여 출원할 경우에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상품의 명칭이 애매할 경우에는 특허청의 심사과정에서 지적을 받아 수정을 해야 하는 수고와 비용이 들게 되고 설사 등록이 되더라도 권리가 명확하지를 않아 분쟁을 일으키거나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오늘날 브랜드의 중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브랜드 관리의 필요성도 그만큼 강조되고 있다. 지나치게 방만하게 상표의 보호 범위를 넓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 꼭 자기에게 필요한 상품만을 명확한 명칭으로 자기의 상표로 등록받아 관리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상표를 등록받고자 출원할 때 어떤 상품을 선정하느냐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이다.